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스니 무바라크 (문단 편집) == 몰락 == 결국 2011년, [[튀니지 혁명]]에 고무된 이집트 국민들이 무바라크의 퇴진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2011 이집트 혁명]]) 그러나 무바라크 정권은 2011년 1월 반정부 시위대의 퇴진 요구를 거부하며 무력 진압으로 맞섰고 시위대와 군경 충돌 과정에서 850여명이 숨졌다. 그러나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군부가 무력 진압을 거부했다. 무바라크는 2011년 9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를 무마하려 했으나 군부와 서방국가는 무바라크에 압력을 가했다. 이미 [[버락 오바마]]는 그 전해 6월부터 민주선거를 지지하고 있었다. 결국 2011년 2월 11일, [[하야]]하고 만다. 사고를 터뜨린 지 2개월 만이요, 집권한 지 만 30년을 8개월 채우지 못한 시점이었다. [[파일:external/gdb.voanews.com/8720E5F7-C2C8-4EA5-9357-A9A0D49774EE_cx0_cy5_cw0_w300_r1_s_r1.jpg]] [[파일:/image/001/2011/08/03/PEP20110803032101034_P2.jpg]] 2011년 8월 3일부터는 두 아들과 함께 피고인의 신분으로 '''[[교도소]]에서 [[재판(법률)|재판]]을 받고 있다'''. 혐의는 공권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여 막대한 사상자를 발생시킨 것과 공공 재산을 빼돌려 부정축재를 한 것. 2012년 1월 3일 오전 8시에는 어떤 이집트 군의관이 이집트 카이로 외곽에 있는 국제의료센터에서 치료를 위해 입원한 무바라크가 있는 병실에 들어가서 무바라크의 목을 졸랐다고 한다. 군의관은 무바라크가 있는 병실에 들어가서 무바라크를 목졸라 죽이려다가 경호원이 이걸 발견했고 그를 체포해 이집트 군 검찰에 넘겼다. 2012년 1월 5일,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cluster_list.html?clusterid=489804&newsid=20120106105807187&clusternewsid=20120106105807187&p=ned|이집트 검찰은 무바라크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고령이라 실제 판결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 [[http://www.ytn.co.kr/_ln/0104_201206021806154211|6월 2일, 무바라크에게 25년형이 선고됐다]]. 84세의 고령임을 생각하면 사실상 종신형이다. 6월 19일(현지시각), 상태가 악화된 무바라크가 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심장]]이 정지해 '''임상적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상 사망한 듯. [[뇌사]] 여부는 미지수라고 한다. 결국 안 죽고 무슬림 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당선 소식을 듣고는 다시 [[혼수]]와 [[수면]]을 오가는 중이라고. 그런데 결국 안 죽었다. 12월 15일, [[http://media.daum.net/foreign/africa/newsview?newsid=20121216102913947|교도소 샤워실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다쳐]] 치료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3년 5월 11일, 구금 2년 만에 이뤄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30512213105189|빈곤층의 궁핍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부 부패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면서 ''''석방될 가능성이 높다'''' 라는 보도가 나와 충공깽인 상황. 그러나 사법부의 다른 소식통에 의하면 다른 부패 혐의로 구금은 계속 될 것이라고 한다. 시민혁명 당시 무력 진압을 한것에 대해서도 종신형이 선고되었으나 이후 판결을 뒤집고 재심을 하라는 판결이 나온 상황. 일각에서는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다시 무바라크를 앞세우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단 석방된다면 대선 출마도 가능해지기 때문에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군부 쪽에서 무바라크를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2013년 8월 20일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30821221305785|법원의 석방 명령이 떨어졌다]]. 무바라크의 석방으로 이집트 군부가 작정하고 무르시를 축출했다는 음모론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무바라크가 다시 대선에 출마하면 확인사살일 듯. 그러나 이집트에서는 [[압델 파타 엘 시시]] 국방장관을 거의 [[전두환|29만원 장군]]식으로 떠받드는 흐름이 감지되어서 무바라크가 직접 권좌에 복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거기에 2014년을 강타한 미친놈들이 출두하면서]]''' 무르시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졌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477051|2014년 11월]] 법원의 무죄판결로 법적으로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었다. 기존에 받은 5년형을 복역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하고 사회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애초에 이번 판결도 IS가 판치는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반발로 인한 세속주의자들의 위기의식의 표현이라는 말도 나올 지경.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4120100255_1.jpg]] 선글라스를 쓴 무바라크가 선고 공판이 있던 2014년 11월 29일 병원을 나서며 지지자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판결 직후 법원 주변에 모여 있던 지지자들은 무바라크가 무죄라는 판결에 환호했고, 무바라크는 "나는 아무 잘못도 한 게 없다"고 말했다. 물론 법원 판결에 열받은 군중 약 2000명이 2011년 반정부 시위 장소 타흐리르 광장 등에 몰려가는 등의 반정부 시위가 이집트 곳곳에서 벌어졌고 [[CNN]]에 의하면 경찰 진압 과정에서 최소 1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당시 유혈 진압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경찰관 170명도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며 "군중은 '그렇다면 대체 누가 시위대를 죽였단 말이냐'며 법원을 성토하고 있다"고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4120100255&Dep0=www.google.co.kr|전했다.]] [[파일:external/www.thetimes.co.uk/101030771_Mubaraks_253474b.jpg]] 호스니 무바라크의 부인 수잔 무바라크는 ’레이디 맥베스’로 통했는데, 그녀는 막후에서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움직이며 대통령 못지않은 권력을 휘둘렀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일화로 이집트의 학교 중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이름을 딴 학교는 388개인데 그의 부인인 수잔의 이름을 딴 학교는 160개에 달한다는 점이 그녀의 영향력을 보여준다고 한다. 많은 이집트인들은 그녀의 야심이 아들 가말이 남편의 ’권좌’를 이어받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결국 쫒겨나서 그 야심을 이루지 못했다. 수잔은 암투병 중인 남편이 이집트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사이 은행에 숨겨둔 비자금 34억원을 반납하고 혼자만 석방됐다. 2018년 9월 무바라크의 모습이 공개됐다. 찰진 금반지를 낀 채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생김새가 여전했지만 사진 속 모습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백발 노인이 된 모습이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사실 나이가 무려 90이어서 별로 이상할 것은 없지만. [[https://twitter.com/Joyce_Karam/status/1035579142950006784?s=20|#]] 2019년 10월 16일에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눈길을 끌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148251|#]] 2020년 2월 25일에 이집트 국영방송이 무바라크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421&aid=0004484638|#]] 사인은 지병인 신부전이 악화돼서이다. 향년 91세. 무바라크의 시신은 이집트 카이로로 이송되어 현지 시간 2월 26일, 국장에 준하는 이집트 국군장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장례식에는 [[2011 이집트 혁명]]이 무색할 정도로 수많은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이집트 혁명으로 서훈 취소, 몰수됐던 것으로 알려졌던 각종 훈장들이 다시 등장했으며, 무바라크 묘역에 함께 안장되었다. 이집트 정계에선 군장으로 치러진 것 자체가 무바라크에 대한 실질적 복권으로 여기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